top of page

나는 당신을 잊었다.

 냐람

 

 

 

는 당신을 잊었다.

당신의 그 목소리를, 머리칼을, 마음씨를, 미소를 잊은 지도, 그래, 벌써 석 달이 지났다.

 

내가 당신을 잊은 것은 봄꽃이 한가득 피어 세상이 화사하게 물든 날이었다. 내가 당신을 잊고 품에서 떠나보낸-당신이 듣는다면 대체 언제부터 자신이 내 품에 있었느냐며 어이없어하겠지- 날이었다.

소문이라는 것은 늘 내게 우호적이었으나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그것은 지나치게 나를 좋아했고 또 집요하게 쫓아왔다. 이번 소문은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랬기에 그 소문은 내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당신의 결혼식 소식은 기어이 기어이 내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퍽 우스운 이야기였다. 여제와 괴도, 원래대로라면 일말의 접촉조차 없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마땅했다. 그러나, 아, 그러나 우리는?

우리는 만났다. 영원토록 만나지 않을 둘이 기적적으로 서로 마주하고 섰다. 웃었다. 친해졌다. 친구가 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래, 당신의 ‘보석’을 노리고 선 괴도가 ‘당신’을 노리게 되고야 말았다. 아아, 아리아, 나의, 나를 위한 달맞이꽃. 어째서 홀로 가련히 피어 한갓 괴도가 그대를 탐하게 하였나.

 

당신의 생은 한 번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내가 구했다. 감히 여제를 해하려 한 어리석은 군단장, 분명히 내가 그 숨통을 끊었다. 당신을 구한 것은 나였다.

그리고 당신은 장기짝이 되어 그나마 트여 있던 숨통마저 틀어막힌 채 흰 족쇄에 묶였다.

 

아름다운 여제님, 현명하신 여제님, 당신은 상징이요 곧 권력의 명분일진데 어찌하여 가련한 백성을 외면하고 당신 하나만의 안위를 걱정하십니까. 여제님, 여제님, 당신은 어째서.

 

구역질 나는 그 목소리를, 당신을 향해 뻗은 손길을 당신은 뿌리치지 못했다. 내가 그 귀를 막아주지 못했고, 그 눈을 가려주지 못했다. 아니, 아마 당신은 내가 가렸더라도 스스로 알아냈을 사람이지만, 그래도.

 

어느 밤 당신은 내게 말했다. 당신이 만났던 인간 아리아는 잊어주세요, 팬텀.

 

당신이 나를 밀쳐낸다면, 당신이 나를 정녕 원하지 않는다면 내게 선택권이란 없다. 결국, 당신이 직접 건네주어 내 손에 넣고 만 스카이아만이 샹들리에의 빛을 한층 정신 사납게 흐트러뜨려 놓을 뿐. 그렇게 어리석은 괴도와 지혜로운 여제님의 교차점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리아. 아리아. 부유섬 에레브에서 메이플 월드를 내려다보는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여제님.

 

그래, 아리아.

나는 당신이 바란 대로 당신을 잊었다.

 

나는 당신을 잊었다.

bottom of page